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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란,

비좁은 자리에 함께 서는 것 인지도 모릅니다.

욕심을 더는 일이 필요하지요..

 

여러분의 화해하는 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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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용카드·카드론

이자율 높은 리볼빙서비스 피해야

# 올해 31세로 3년 전 취직한 김주영 씨는 매월 25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그는 취업과 동시에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부모와 함께 거주해 공과금 같은 주거비용은 필요 없다. 하지만 의류, 휴가비 등으로 신용카드 월 결제액이 150만원이 넘는다. 지금까지의 신용카드 부채는 모두 600만원이다. 그는 주택청약종합저축에 매월 10만원씩 불입하고, 6개월 전부터 국내 주식형펀드에 매월 20만원씩 불입한다(총 120만원 납입). 변액종신보험과 연금저축신탁에 각각 월 15만원, 10만원을 낸다.

신용카드로 부채가 늘어난 경우 해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월간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신용카드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다.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부채가 월 소득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 소비와 상관없는 지출(비소비성 지출) 가운데 임의로 투자하던 돈을 줄인다. 소비성 지출은 단기간 최대한 낮춰 3개월 이내 빚을 떨어내야 한다.

월 소득을 초과해 신용카드를 쓰고 있다면 강도 높은 처방이 필요하다. 현금성 자산과 단기 금융자산을 해약해 부채를 낮춰야 한다. 보유한 금융자산을 처분해도 전체 부채 상환이 어렵다면 이자가 높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대신 금리가 낮은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1년 이내 전체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김 씨는 신용카드 부채가 600만원인데 리볼빙서비스(카드결제대금을 다 결제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연체를 피하기 위해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차월로 이월해주는 서비스)를 사용해 부채가 급격히 늘었다. 리볼빙서비스 대출이자는 연 25%에 달하는, 이른바 악성부채다. 이 경우 주식형펀드를 환매해 일부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 김 씨의 회사는 연 3%의 저리로 1000만원 한도의 대출을 지원한다.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2. 지나친 보험료
보장성보험은 월소득 10% 이내로

# 경기도 일산에 사는 43세 최영식 씨는 대기업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업주부와 자녀 2명이 함께 사는 평범한 4인 가족이다. 세후 연평균 급여는 6500만원으로 괜찮다. 자산은 4억6800만원인데 집이 4억5000만원을 차지한다. 부채는 부동산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1억6500만원. 자산 대비 부채 규모는 34.5%로 적정비율인 30%를 좀 넘어선다. 적금, 연금 등 비소비성 지출이 월 145만원. 생활비, 교통비 등 소비성 지출은 420만원 수준이다. 보험 지출 비용은 72만원이다.

최 씨 가족의 재무구조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주택이 전체 자산의 96%를 차지한다.

현금이 긴급하게 필요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게 되면 부채가 심각하게 커질 수도 있는 구조다. 부채 규모가 줄지 않고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보험약관대출이 800만원이나 된다. 보장성보험료가 72만원인데, 통상적으로 보장성보험료를 본인 월평균 소득의 10% 이내로 조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좀 크다.

백정선 TNV어드바이저 대표는 “종신보험과 의료실비로 구성된 72만원의 보험료를 정기보험과 의료실비로 34만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며 “종신보험 해지 환급금으로 약관대출금을 없애면 부채를 다소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신용카드나 자동차 할부 등 고금리 대출을 가장 먼저 상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 자동차 할부
젊을 때 ‘마이카’는 재테크의 적

# 32세 동갑내기 맞벌이 학원 강사 부부는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다. 월 소득은 650만원대. 또래에 비해 넉넉하지만 자산이 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5개월 전 남편의 생일날 3200만원짜리 SUV 차량을 전액 할부로 샀다. 월 할부금은 100만원, 5개월이 지난 할부금 잔액은 2870만원이다. 중도상환수수료는 1%다. 월 고정저축은 청약저축 10만원, 저축성보험 30만원, 적금 10만원, 펀드 20만원 등 70만원 수준이다. 보장성보험에 42만원을 쓴다. 순자산은 전세금을 포함해 1억2000만원 수준이다.

자동차는 재테크의 적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산 사람과 사지 않은 사람의 자산 차이는 차 한 대 값이 아니다. 자가용을 유지하려면 유류비, 보험료, 세금 등 월 45만원을 쓴다. 이를 고려하면 차의 유무에 따라 몇 년 뒤의 금융자산은 60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자동차를 3년 늦게 중고차로 산다고 하면 적어도 4000만원은 버는 셈이다.

솔루션은 단순하다. 우선 1년간 월 고정지출을 줄여 마련한 목돈으로 자동차 대출금을 일부 갚는다. 2000만원으로 대출액이 줄어도 월 할부상환액은 70만원으로 낮아진다. 2인 가족 보장성보험이 지나치게 많다. 15만원으로 줄여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월 저축여력은 50만원 이상 늘어난다.

4. 부동산담보대출
예상보다 임대소득 낮은 부동산 처분

# 강현세 씨(45)는 변호사로 자산이 적지 않다. 주거용으로 대치동에 9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 중이다. 투자용 부동산으로 신당동에 4억원짜리, 광주에 8000만원짜리 집을 갖고 있다. 수입은 월 1000만원. 부동산임대소득은 150만원이다. 강 씨가 받은 대출액은 총 6억7000만원이다.

강 씨는 대출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문제다. 총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60%를 넘는다. 또 소득 대비 지출이 많아 마이너스 대출 잔액은 계속 늘어간다. 주거용 부동산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 이자가 5.6%인데 다소 높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신당동에 마련한 투자용 부동산은 자산 가치 상승이 별로 없었고, 앞으로도 크게 오를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월세를 높게 받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해법은 대출을 다시 받으라는 것이다. 현재 거치 10년 상환기간 30년으로 받고 있는 대출을 3년 고정금리 5%에 거치 5년, 12년 원금균등상환으로 바꾸는 게 좋다. 수도권 부동산을 매각해 마이너스, 신용, 담보 등 각종 대출을 상환한 후 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으로 다시 투자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5. 전세자금대출
전세대출은 전세금 30% 넘지 말아야

#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결혼 4년 차 김수정 씨 부부는 최근 전세를 옮기려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월세로 50만원을 더 내라고 한다. 월세를 낼 바에야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아예 큰 평수로 옮기겠다는 생각이다. 보증금 1억원에 전세금 8000만원을 보태 1억8000만원짜리 전세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맞벌이 소득은 700만원으로 적지 않다. 큐레이터인 부인은 내년 출산을 앞두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을 받더라도 전체 전세금의 30%를 넘어서는 안 된다. 현재 1억원의 전세금을 갖고 있다. 여기에 30% 수준인 3000만원 정도를 더 대출받아 최대 1억3000만원의 전세금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로 옮겨가는 게 맞다. 3000만원은 6년 상환계획을 잡고 매월 47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된다. 남편 소득 250만원의 30%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이 가정은 출산이 변수다. 부인이 휴직한다고 가정할 때 현재 소득인 700만원이 계속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낳고 외벌이로 전환될 때를 대비해 남편 소득의 30%는 저축해야 한다.

6. 자녀학자금·노후자금
보유 주택 팔고 전세로 옮기자

# 올해 51세인 이민식 씨는 경찰 공무원이다. 25년 동안 근무하며 3년 전 서울 양천구에 99㎡(30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현재 시세는 6억원. 1억원을 대출받아 이자를 내고 있지만 조만간 원리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외벌이로 알뜰하게 살아왔지만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등록금이 고민이다. 두 명의 딸이 대학에 가면서 매년 학자금 대출이 1400만원으로 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부채가 급격히 늘어난다. 첫째 딸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석사 1년 과정만 더 도와달라고 해 이것도 걱정이다. 월 소득은 400만원으로 생활비, 교육비, 부채상환이자 등으로 전부 쓴다.

이 씨의 경우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0%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자녀 대학학자금을 대출에 의존하는 게 문제다. 막내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학자금 대출은 9000만원으로 치솟는다. 이 경우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30%로 늘어난다.

이 씨는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다. 집 한 채만 있을 뿐 노후 대비도 제대로 못 했다. 이런 가정은 부모가 어느 선까지 자식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첫 단계다. 학자금을 전부 대주겠다고 결정하면 현재 아파트를 매각한 뒤 전세로 입주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시점에서는 은퇴 뒤 평생 살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아파트를 구입해야 한다. 2년 뒤 현재 주택을 매각하고 서울 근교로 이사 간다면 3억원 수준으로 새로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이때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은퇴 자산을 마련한다.

7. 제2금융과 대부업체 대출
카드론 빨리 갚을수록 유리

# 경기도 고양에 거주하는 김미희 씨 부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회사 부도로 남편이 실직했다. 이후 지역 택배사업을 하려 했으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했다. 몇 해 전 휴대폰가게를 열었다.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사업이 잘되는 듯했으나 둘째 아이의 심장병 치료로 큰돈을 쓰게 됐다. 평균 수입은 330만원 정도다. 김 씨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빚으로 고생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받은 카드론은 치명적이다. 신용카드를 돌려 쓰다가 3개월 정도 연체됐다.

솔루션은 김 씨 부부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 임차보증금 담보대출은 보증금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2500만원이 보증금이라 2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평균 금리가 연 16%인 카드론 대출을 상환하면 된다. 대신 6년 동안 임차보증금 담보대출을 갚기로 했다. 또 하나, 김 씨 부부는 개인 워크아웃을 활용해야 한다. 카드론에 대한 부담을 안기보다 상환계획을 세우자는 것. 이 가정은 8000만원 신용대출이 있었는데 8년 동안 원금을 월 83만원씩 나눠 갚는다. 사업에 필요할 것 같아 자동차를 샀지만 이를 처분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가 없어도 물품을 조달하는 데는 문제없었다. 57만원이나 내던 보장성보험도 실질소득 대비 7% 수준인 20만원으로 낮췄다. 부인은 가까운 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하기로 하면서 남편의 부담을 덜어줬다.

8. 부모의 대출
부모의 파산신청도 한 방법

# 대기업 임원을 끝으로 퇴직한 50대 중반 김상봉 씨는 경험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하다 총 2억원의 순 부채를 갖게 됐다. 이는 29세의 딸에게 전가됐다. 딸은 연봉 4000만원을 받고 있는데 결혼도 준비하고 부채도 갚고 부모님 생활비도 감당해야 할 처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년부터 김 씨가 10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김 씨의 파산신청이다. 이는 국민연금을 받기 전에 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시기에 부채를 청산하면 ‘개인회생제도’가 적용되고 연금의 일부분을 5년 동안 부채 상환에 지출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수급하기 전에 파산을 신청하면 100만원 전액을 김 씨 부부의 은퇴자금으로 쓸 수 있다.

9. 개인회생이 필요한 경우
부동산 팔 수 없으면 개인회생 신청

# IMF 외환위기 직후 명예 퇴직한 박준서 씨는 명예퇴직금과 주식투자 수익으로 생활비를 감당했다. 그러나 높아지는 생활비와 자녀 대학등록금으로 일산 195㎡(59평)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았다. 10년간 발생한 담보대출 규모는 6억5000만원이다. 한때 시가 13억원을 호가하던 아파트는 7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는데도 거래가 되지 않는다. 박 씨 부부 수입은 50만원인 국민연금이 전부다. 두 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월 600만원 정도다. 10년 차 외국계 은행원인 둘째 딸은 월 480만원을 대출이자 상환에 쓰고 있다.

소비를 줄이는 건 기본이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로선 부동산 처분 없이는 해법이 없다. 또 하나의 해법은 박 씨가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교환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대형 아파트가 필요한 수요자를 찾는다. 수익형 임대부동산과 교환할 경우 담보대출을 갚고 임대수익을 은퇴생활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수요자를 잘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회생/파산 등 무료법률상담 안내
                                                                                                                  law도우미 임철민
                                                                                                       (주/야) 010 - 3755 - 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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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이라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달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들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위해 되돌려주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중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이겠습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서른 살이 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어떤 사람을 고용했고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나는 쫓겨났습니다. 성인으로서 내 삶의 초점이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참혹함에 빠졌습니다.

 

첫 몇달동안 나는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앞서의 기업가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어떤 느낌, 지휘봉을, 내게 전해진 것처럼 그렇게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이 그것을 조금도 바꾸진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중 최고의 경우였습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은, 모든 것에 확신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 내 처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린과 나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시험약이었지만, 환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 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이런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날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으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약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받았는데,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췌장이라는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 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은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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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할 때마다 달리는 댓글 가운데 뜨끔한 내용이 2가지 있다. 하나는 "그러는 기자 너는 부자냐"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 소용없다, 부모가 부자여야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너는 부자냐"라는 문제는 사적인 부분이니 일단 넘어가자. 반면 '부자 대물림' 지적은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이므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부자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고 부모가 가난하면 평생 돈에 쪼들리며 힘겨운 고역에 시달려야 한다면 사회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거창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물려 받은 재산 없이 이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글은 재산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돈 없는 당신이 부자가 되기 위한 7단계이다.


1. 당신 자신이 최고의 자산이다.


돈이나 건물, 땅 혹은 금덩이가 없다고 재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 자신, 당신의 생명과 신체, 정신, 영혼, 지식, 지혜, 인간관계 그 모든 것이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경영학에서 거창한 말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하는 것을 당신은 가지고 있다. 인적 자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자일 수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요크 대학의 모셰 밀레브스키 교수는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인적 자본이란) 물적 투자 대상이 아니지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일할 수 있는 능력,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능력,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인적 자본"이라며 "당신은 마치 금광이나 유전 같은 존재이며 특히 20대라면 당신은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인적 자본"이라고 말했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일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수록 일의 결과물로 재정적 자산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인적 자본의 가치, 즉 당신이 미래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인적 자본은 지갑에서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은 아니지만 예금이나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다른 자산처럼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2. 주제를 파악하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말이면서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고 평가 받는 명언은 아마도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일 것이다.


당신 자신은 소중한 인적 자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더 높은 가격으로 채용되고 어떤 사람은 헐값에 사용된다. 당신 자체가 자산이란 사실을 인지했다면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봐야 한다.


당신이 가진 능력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력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지 냉정한 시선으로 계산해보라.


3. 인적 자산의 가치를 높여라


주제 파악이 끝났다면 3단계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늘리기 위한 투자만 투자가 아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투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금 위치가 100%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았으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두들 바란다.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는 재산, 자기 자신에 투자하라.


하지만 투자할 때는 리스크와 기대 수익을 따져봐야 한다. 돈을 투자할 때도 원금이 보장되는지, 원금 손실 위험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기대되는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지 않는가. 자신에게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투자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3가지다. 첫째, 이 투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수익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에 투자하고 싶다면 좋다.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수익이 무엇인가.


투자의 기대 수익을 생각할 때 주의할 점은 자의적으로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가 더 나아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진짜 그럴까. 과연 외모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일까. 외모가 개선되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둘째, 투자에 따르는 비용과 위험은 무엇인가. 성형수술을 할 때 드는 비용과 걱정되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가 되려 하는데 그 때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고 대학교수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위험요인은 무엇인가 따져보라.


셋째, 투자를 감행하고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임용고시를 통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임용고시는 앞으로 몇 살 때까지 도전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그 때까지 시험에 붙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했을 때 극복하기가 어렵다.


4. 일하면서 투자하라


돈이 필요해서 서둘러 일을 시작한 뒤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급여가 너무 낮아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등 이유는 많다.


이 때문에 뒤늦게 직장을 그만두고 새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감하게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거나 아니면 아예 로스쿨이나 약학대학원에 입학해 다른 직업을 모색하는 식이다.


이 때 2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단순히 직장을 옮길 생각이라면 절대 지금 직장을 그만 두지 말라. 커리어 관리 회사인 식스피겨스타트(SixfFigureStart)의 공동 창업자인 캐롤린 센지아-레빈은 새로운 직장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지금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이 있는 사람이 직장 없이 일을 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지금 직장에서 일이 많아 직장을 옮기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회사에 무엇인가 이유를 대고 근무 시간을 조절해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회사에 이유를 대기가 어렵다면 출근 전, 퇴근 후, 공휴일 등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기억하라. 실직자가 되는 순간 일자리를 얻기는 배로 더 어려워진다.


둘째, 일의 내용을 바꿀 생각이라면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광고회사로 이직하거나 부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사람이 금융회사로 전직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지만 기업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월급 주면서 일을 가르쳐야 할 필요는 없다.


일의 내용을 바꿀 때 지금까지의 경력이 새로운 일에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직업을 바꾸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나이가 들수록 당신 자신과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분리하기가 어려워 완전히 다른 분야로 이직하기는 어렵다.


다만 변호사나 약사처럼 자격증으로 보호가 되는 직업은 전직이 조금 더 용이하다.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마저도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져 전직 커리어를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5. 인적 자본과 금융 자본은 다른 곳에 투자하라.


당신이 일을 해서 얻는 근로소득과 이 근로소득을 투자하는 금융자산은 분리돼야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우리사주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당신 자신이라는 인적 자본과 당신이 가진 금융 자본을 한 기업에 '몰빵'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이 다니는 회사가 위험해진다면 당신은 인적 자본을 통해 벌던 근로소득은 물론 우리사주라는 금융자산까지 잃게 된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에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엔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한 순간에 직장도 잃고 돈도 잃었다.


아울러 안정적인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일수록 금융 자산은 조금 위험한 곳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인적 자본이 안정적 소득을 창출하므로 금융 자산으로는 좀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분야에 투자해도 좋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교사나 공무원 같은 경우 급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주식형 펀드 등에 장기 투자해 은행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정년이 짧은 기업에 종사하거나 근로소득 자체가 불규칙한 프리랜서라면 직업이 불안정한 만큼 금융 자산은 안정적인 예금이나 채권으로 모아나가는 것이 좋다.


6. 건강에 신경 쓰고 보험에 가입하라


몸이 거의 유일한 재산이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 자신의 생활 습관을 꼼꼼히 살펴 건강에 해롭거나 몸에 무리가 되는 습관은 고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한다 해도 질병이나 사고를 100%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몸 외에 다른 재산이 없는 사람일수록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보상 받을 수 있도록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7.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라


가진 돈이 별로 없는 사람, 학벌도, 인맥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돈이 없어서 안돼." "저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잘 되는 거야." "저 사람은 부모가 권력가니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있는 놈만 잘되는 더러운 세상." 이런 생각이 자신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방해꾼이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잘난 것도 없는데 부모 잘 만나서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당신 자신은 못된 상사 만나 휴일도 없이 근무하는데도 쥐꼬리 같은 월급에 나날이 살림살이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는 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있다. 부정적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와 환경을 낳는다.


아무리 부정적인 환경이라도 단 하나라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 직장생활이 너무 괴롭다면 직장에 계속 다니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되 괴로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작은 즐거움을 찾아보자.


예컨대 일주일에 한 번씩 꽃 한 송이를 사서 집을 꾸민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자전거를 탄다든지, 큰 돈 들이지 않고 부정적인 환경에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소일거리나 취미를 찾아보자.


마지막으로 몸 하나밖에 가진 재산이 없다고 자괴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 두 가지를 소개한다.


송나라 때 학자 정이란 분은 "소년시절에 과거 급제하고 부모형제의 권세가 대단하고 재주와 문장이 뛰어난 것이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경영의 신 마스시타 고노스케는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고백했다.



- 머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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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치매에 약물치료보다 효과적
원만한 인간관계·리더십에도 큰 도움

 

최근 연예기획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소속 연예인들의 우울증 관리가 새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안재환, 최진실, 장채원, 김지후씨에 이어 올 들어서는 영화배우 김석균, 트로트 가수 이창용씨 등이 잇달아 자살했다. 이들은 대부분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연예인들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자살과 우울증은 놀라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경제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해 상반기부터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수는 더욱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우울증은 교통사고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 당 자살 사망률은 24.8명으로 교통사고(15.5명)보다 훨씬 높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가장 큰 이유를 우울증으로 본다.

우울증은 'depression'을 번역한 것인데, 이 용어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이나 울적한 기분이 곧 우울증의 핵심 증상인 것처럼 착각한다. 사실은 뭔가에 짓눌려서 몸과 마음이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억눌린 상태가

곧 우울증이다.

 

무기력증을 느끼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무가치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우울증의 핵심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무기력증뿐만 아니라 기분이 쉽게 자극 받는 과민상태로 흔히 나타난다. 과다한 분노나 짜증 혹은 반항적 행동으로도 표출된다.

우울증은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뇌의 질환이다. 따라서 마음을 즐겁게 고쳐먹는다고 낫는 병이 아니다. 다시 말해 반드시 치료 받아야 할 뇌 질환이다. 우울증이나 치매 환자의 뇌 사진을 찍어보면, 정상인에 비해 뇌실이 확대되어 있고 실제적인 뇌의 부분은 쪼그라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울증만이 아니다. 치매와 불안장애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자살, 우울증, 치매, 불안장애 등의 급속한 증가는 우리 사회 전체가 엄청난 불행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치매 등을 가져오는 병든 뇌를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약은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몸까지 날씬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까지 덤으로 제공한다. 거의 만병통치약이라 할만한 이 명약의 이름은 바로 규칙적인 운동이다.

의사들은 운동이 뇌 안의 피순환을 향상시킴으로써,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사고 능력을 증진시키며 중독의 가능성을 크게 줄인다고 입을 모은다. 운동은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울증과 신경과민 증상에 대해 약물 치료와 운동 치료를 병행해 비교한 결과, 운동이 몇몇 약물에 비해 훨씬 나은 결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하버드대 정신과 의사 존 래티는 "운동은 집중력과 침착성을 높이는 한편 충동성을 낮춰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과 리탈린을 복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고 설명한다. 또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면 신경세포가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효과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운동해야 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에는 항우울제 처방 대신 운동을 권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2008년 영국 정신건강재단(MHF)은 가벼운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나 기타 치료법 대신 운동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22%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운동은 우리의 뇌를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머리를 좋게 해주기도 한다. 운동은 늙은 신경세포 간에 연결된 망을 만들어내며, 뇌 세포에 혈액과 영양을 공급한다. 특히 운동을 할수록 뇌에서 생기는 향신경성 물질(BDNF)은 지적 능력을 향상시킨다.

세계적 생명공학연구소인 솔크연구소와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석 달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한 건강한 성인의 뇌에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운동은 특히 성년의 뇌세포 재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뇌의 신경세포는 감소한다는 그간의 통념을 깬 것이다. 또 이 세포는 학습과 기억을 관장한다.

미국 듀크대학 메디컬센터 연구소는 규칙적인 운동이 기억력, 계획력, 조직력, 문제해결 능력 등을 높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규칙적인 운동이 학습능력, 집중력, 추상적 사고 능력을 15% 이상 향상시켰던 것이다.

운동은 노인성 치매와 알츠하이머 병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인지신경과학 권위자인 일리노이 대학의 크레이머 교수팀도 최근 "에어로빅 등의 정기적인 유산소운동이 노화로 인한 뇌기능 저하를 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뇌기능을 발달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노년층이라도 운동을 통해 뇌기능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6개월 가량의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인지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두엽과 측두엽의 회색질 볼륨 증가를 가져왔고, 실제로 사고의 속도와 인지 기능, 기억력, 판단력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운동은 몸뿐 아니라 뇌도 건강하게 회복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운동을 하게 되면 뇌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긍정적 감정이 강화되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면서 원만한 인간관계와 리더십의 근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업무성취도와 창의성도 높아진다.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길은 바로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이다.

"몰아치기는 역효과… 일주일에 세번 이상"

효과적인 운동 '7계명'

운동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운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운동은 몸의 건강보다도 마음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감정통제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 규칙적인 운동이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충분히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운동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한 결과다. 다른 어떠한 일정이나 약속을 잡기에 앞서 일주일에 3번 이상 1시간씩 운동하겠다는 계획을 먼저 세워라. 그리고 다른 일정이나 약속은 이 운동 시간을 피해서 잡으면 된다.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시간 없어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다음은 운동하는 요령이다.

1. 유산소, 근력, 장력 운동을 골고루 한다.

유산소 운동(조깅, 에어로빅, 줄넘기 등)과 근력 운동(아령, 팔굽혀 펴기 등), 장력운동(요가나 스트레칭)세가지를 고루 해야 한다. 하루에 한가지 운동을 1시간 하는 것보다는 하루에 세가지 운동을 20분씩 나눠서 하는 것이 더 좋다.

2. 1주일에 3번 이상 운동을 한다.

운동의 효과는 규칙적으로 해야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번 7시간 동안 몰아서 운동하는 것보다는 1시간씩 세 번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3. 즐겁고 재미있을 정도로 적당히 한다.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천천히 걷기부터 하는 게 바람직하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젊었을 때 했듯이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부상과 부작용의 우려가 있다.

4. 리듬을 타면서 운동한다.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이나 댄스스포츠를 하는 게 정신 건강에 가장 좋다. 줄넘기도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 것이 좋다.

5.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함께 할 친구를 만들면 더 즐겁고, 더 꾸준히 할 수 있다. 관심 있는 운동 종목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6. 야외에서도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등산이나 걷기 등 야외 운동을 곁들이는 것이 좋다. 햇빛은 우울증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7. 운동의 효과를 믿는다.

꾸준히 운동하게 되면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며, 인간관계도 개선되고,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져라. 규칙적 운동은 우울증을 예방해줄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을 더욱더 행복하게 하는 효과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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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치료 가이드 ] 



1 사소한 일에 화가 난다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과잉 배려를 한다. 그만큼 상대에게도 비슷한 정도의 배려를 기대한다. 하지만 높은 기대 수치는 항상 실망을 가져오는 법. 이럴 경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화를 발산하게 된다. 배려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과잉 배려는 자연스럽지 못할뿐더러 자기희생을 가져오므로 결국 화가 폭발하기 십상이다. 이런 증상은 꼼꼼하고 용의주도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은 일이 조금이라도 정해진 대로 되지 않으면 초조해지고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 치료 가이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항상 자기 생각대로 생활하라. 상대에 대한 배려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혹은 지위나 명예에 얽매여 억지로 일을 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사는 것은 인생 낭비다.


2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

 

우울증에 빠지면 무감동, 무감정, 무관심의 상태가 된다. 다른 사람은 모두 즐거운 것 같은데, 거기에 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괴로워진다. 건강한 사람은 우울해하는 사람을 보면 “여행을 떠나라” “클럽에 가서 춤을 추라”고 권하지만, 이는 오히려 우울증 환자를 한 번 더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여행 한번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건강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치료 가이드-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라! 사람과 만나는 것 자체가 고통일 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을 들어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면 그림을 그려라. 수집을 좋아하면 수집을 하라. 특히 예전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면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우울증 치료 중 으뜸 치료법이다.


3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울증에 빠지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해 뇌 활동이 둔해진다. 인간에게 세로토닌은 마치 컴퓨터의 메모리 용량과 같은 것이다. 용량이 작으면 작업 속도가 떨어지거나 심하면 시스템이 다운되기도 하듯, 세로토닌이 감소하면 사고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 치료 가이드- 한번에 하나씩 해결하라!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사람들은 대개 꼼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항상 완벽을 추구한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쳐 정신적인 부담이 극에 달하고 결국 생각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럴 때에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후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보자. 그러면 어느새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4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는 마치 술과 같다. 적당하면 건강에 좋지만 과하면 뇌기능을 약화시킨다. 우울증에 걸리면 코티졸이 과다 분비돼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내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비관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불면증, 수면부족 증상이 생기고 이는 비관적인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어 더욱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대로는 가족이나 직장에 피해를 주겠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고,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질 때도 있다. 특히 이런 환자들은 새벽에 잠이 깨 더 이상 자지 못하는 새벽각성이 많다. 새벽에 잠이 깼을 때 우울 증세는 가장 강해진다. 이때 후회, 자책, 비관적인 생각 등이 현저히 증가한다.

■ 치료 가이드- 업무시간을 잘 지키는 회사를 선택하라! 언젠가부터 ‘불평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회사가 도산이냐, 존속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그런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인지 법으로 근로시간이 규정돼 있는데도 규정을 지키지 않는 직장이 많다. 이런 직장에서 일하면 생활리듬이 깨진다. 수면시간도 부족해진다. 바쁘고 힘에 부친 생활을 하는 중에도 늘 비관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이런 상태를 지속하다 갑작스레 여유가 생기면 자살을 시도하기 쉽다. 구성원의 건강 상태를 전혀 배려하지 않아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회사라면 미련없이 떠나라. ‘참고 일해야 성공한다’는 그들의 논리에 휘둘리지 마라. 참고 일하면 마음의 균형이 깨져 결국 실패하게 될 테니. 적절한 근로시간을 지키고 쉴 때 쉬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5 활기와 의욕이 없고 쉽게 지친다

 

우울증 환자는 달리는 도중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녹초가 된 마라토너와 같다.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결국 숨을 헐떡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쳤다 판단되면 재빨리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쉬는 것 자체를 잘못된 일로 여기고 그저 내달리기만 한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에게 활력이나 의욕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엔 이런 의욕 상실이 40대 이상의 높은 연령층에서 많이 발견됐는데 최근에는 젊은층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추세다.

■ 치료 가이드-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게 습관이 돼버린 사람이 그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람은 지금까지 해온 스타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사로잡힌다. 결국 우울증에 걸려서야 처음으로 쉰다는 것이 뭔지를 깨달은 사람이 많다. 우울증 치료 후 다시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재발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6 술에 의지해 잠을 잔다

 

우울증 초기 증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면증이다. 처음에는 술을 이용하는 수준이지만 점차 상황이 역전돼 결국 알코올 중독 증상에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술 마시고 자면 일어난 후 최상의 숙면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면서 더욱 술에 의존하고 기분은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알코올의 또 다른 부작용은 바로 기분의 증폭 작용이다. 즐거울 때 마시면 더 즐거워지지만, 반대로 우울할 때 마시면 더더욱 우울의 우물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치료 가이드- 차라리 수면제를 복용하라! 술보다는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자는 게 잠의 질적인 면에서나 일어났을 때의 개운함 면에서 좋다.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 불면이 지속되면 거의 100% 우울 정도가 심해진다. 이럴 때에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복용하라. 수면제를 복용하면 쉽게 잠을 청할 수 있는데도 의존성을 우려해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최근엔 의존 경향이 적고 자연스러운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한 약이 많아졌다.


7 이유 없이 가족에게 신경질을 낸다

 

우울증 초기에는 신경질적이 된다. 우울증은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런 사람은 밖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과잉 배려를 한다. 그 결과 심리적으로 완전히 녹초가 돼버린다. 직장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그 스트레스를 식구들에게 푸는 것이다.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가 있다 치자.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좋게 지내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화가 쌓인다. 집에서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마음속에 뒤얽혀 있던 것과 화가 섞여 심한 초조감을 느껴 결국 이유 없이 가족에게 신경질을 내게 되는 것이다.

■ 치료 가이드-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라! 우울증인 사람은 본인이 알면서도 가족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이를 나중에 후회하며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럴 때에는 인간관계에 지쳐 있고 어떤 말을 들어도 화가 나는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좋다. 숙면으로 몸의 피로를 풀어주면 마음까지 편안해져 눈에 띄는 우울증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


8 아침에 기력이 없다

 

우울증에 걸리면 특히 아침에 기력이 없어진다. 잠이 깨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2~3시간이 걸리거나, 점심 전까지 이불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지각 때문에 퇴직을 권고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도 점심 무렵이 되면 몸이 가벼워지고, 저녁이 되면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진다. 이런 증상 때문에 자기 전에는 ‘내일은 회사에 꼭 늦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먹어도 다음날 아침이면 전혀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간다고 스스로 약속했으면서도 전혀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끈기가 없는 인간이나 거짓말쟁이로 치부해버리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일단 우울 증상이 심해지면 아무리 약속을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게 되고 결국 더 괴로워진다. 우울증이 심하면 잠이 얕아져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점점 쌓인다.

■ 치료 가이드- 우선 약물요법으로 수면장애를 개선하라!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저녁이 되면 좋아지는 경우는 대부분 수면장애, 특히 새벽에 잠이 깨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각성 때문이다. 이런 수면 장애가 계속되면 우울증세가 악화되므로 우선 약물로라도 수면장애를 개선하라. 물론 건강한 생활 리듬을 찾는 선에서 처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9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하다

 

‘체인을 너무 세게 감은 자전거’는 힘이 확실히 전달되긴 하지만 끊어지기도 쉽다. 강한 의무감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일본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반대로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이런 사람이 그다지 존경받는 풍토는 아니다.

■ 치료 가이드- 적당함은 당신을 지키는 지혜임을 명심하라! 적당히 하라는 말. 이는 대충 하는 것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적절히 하라는 뜻이다. 항상 100%로 분발할 수는 없다. 가끔 적당히 숨을 돌려야 한다. 이런 자세는 자신을 지키는 생활방식의 핵심이다. 만약 당신이 회사에서 정말 도움이 되는 인재라면 회사는 당신이 쓰러질 정도로 일하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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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 자녀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부모의 역할 ]

 

 

part 4. 10대이후

 

 

이혼의 영향

 

○ 분노, 비난, 슬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는데 이것을 우울, 공격성, 거짓말, 도벽 등으로 표현한다.

 

○ 부모가 계속 갈등하면 이런 환경으로부터 도망하려 한다.

    (가출, 비행, 약물남용, 중퇴, 여자의 경우 사랑하고 받는 느낌을 갖기 위해 임신할 수도 있다.)

 

○ 도덕적이고 판단적인 경향 때문에 한부모를 속죄양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

 

○ 잘 적응하는 것 같지만 고통과 당혹감이 크다. 부모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고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결혼이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딸은 부(모)로부터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갖고 

    미래의 남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부모들의 역할

 

○ 의사소통기술을 학습하고 실천해야한다.

 

○ 공감적이고 경청적인 대화를 해야한다.

 

○ 독립성과 외부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장려해라.

 

○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 합리적 기준과 규칙을 합의하여 만들어야 한다.

 

○ 자녀가 보이는 반응들(부인, 우울, 가출 등)에 대해 민감해져라.

 

○ 부모 모두를 사랑해도 된다는 환신을 줘야한다.

 

○ 교사나 상담사와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해결한다.

 

○ 의사결정에 협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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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 자녀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부모의 역할 ]

 

 

Part3. 학령전기

 

이혼의 영향

 

○ 슬픔과 불행의 감정.

 

○ 좌절경험으로 무기력감.

 

○ 재결합 환상으로 좌절감을 느낀다.

 

○ 비양육부(모)를 그리워 함.

 

○ 학교에서 집중하지 못해서 학업수행의 문제, 또래와의 문제를 보임.

 

 

 

부모들의 역할

 

○ 한편에 서도록 강요하지 말것.

 

○ 부모의 사랑을 확인시켜 줘라.

 

○ 이혼의 사실을 솔직히 알려주고 환경이 변화될 것임을 알려줘라.

 

○ 교사에게 가정의 변화를 알리고 , 성적이나 행동이 나빠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라.

 

○ 조부모와의 만남을 장려하라.

 

○ 생활의 변화를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것으로 보상하지 말라.

 

○ 자녀와 경제적인 문제를 논의하지 말라.

 

○ 부모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느끼므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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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 자녀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부모의 역할 ]

 

 

Part2. 전학령기

 

이혼의 영향

 

○ 유기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 퇴행, 떼쓰기, 울기, 잠을 못자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환상적 사고가 연계되어 부모의 이혼에 대한 죄책감이 생기고, 부모의 재결합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부모들의 역할

 

○ 퇴행, 자위행위 증가, 손가락 빨기 등을 보이며 이는 관심을 요하는 증거이다.

    끈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확인시켜 줘야한다.

 

○ 이혼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서 해줘야 한다.

 

○ 일상적인 패턴을 유지시켜 줘야한다.

 

○ 비양육부(모)와 지속적인 만남을 갖도록 해야한다.

 

○ 매일 아침 자녀와 일정을 검토한다.

    이는 유기불안 감소를 위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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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 자녀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부모의 역할 ]

 

Part 1. 유아기

 

 이혼의 영향

 

  ○ 가장 많은 혹은 최소한의 영향을 받는 시기이다.

  

  ○ 부모와의 관계형성이 잘 되어있으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영향을 덜 받는다.

      그러나 부모가 불안해 하면 아이도 행동적, 신체적으로 반응한다.

 

  ○ 울고 부끄러워 하며 부모에게 매달린다 (매우 정상적 반응임)

 

  ○ 수면장애를 보이는데 이는 격리불안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 격리불안으로 안 떨어지려고 한다.

 

  ○ 퇴행을 보이는데 이것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최근에 성취한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부모들의 역할

 

  ○ 가능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 보통보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고 일상적인 것을 유지하고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 양부모와 빈번한 접촉이 필요하다 (부모들의 문제와 자녀들의 문제를 분리하여 접촉)

 

  ○ 인형, 그리기, 장난감 등을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이혼에 대한 정보전달이 필요하다

      (아이의 연령에 맞게 이혼에 대한 설명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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