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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간호사 일을 계속 할 수 있고
신용불량자 멍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인가결정을 받은 A씨.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빚쟁이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던 그는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카드 빚을 내서 호주유학을 간 게 잘못이었어요. 공부하느라 쓴 카드 빚이 4,000만원을 넘어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국땅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나 생활고로 신불자가 된 다른 채무자와 달리 그는 호주간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무리하게 카드 빚을 쓰다 하마터면 국제미아가 될 뻔했던 경우다. 대학을 졸업한 뒤 95년부터 5년간 종합병원에서 일한 그녀는 2000년 국제간호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퇴직금 1,000만원만 갖고 무모하게 호주로 떠났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매 학기 수업료를 내기 위해 신용카드에 손을 댔던 그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카드 빚 원금(3,500만여원)과 엄청난 이자에 허덕이다 결국 파산에 직면했다. 그녀는 "더 이상 카드 빚을 쓸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귀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자포자기했다"며 호주에서의 악몽 같은 기억을 더듬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호주에서 생활하기 힘들어진 A씨는 결국 9월 초 귀국, 한 사설병원 간호사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카드사 추심전화의 '언어폭력'이 시작됐다. 인격적인 모독과 협박성 언사 때문에 대인관계까지 지장을 받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부모님 볼 면목이 없었어요. 대학까지 나와 종합병원에서 괜찮은 생활을 하던 딸이 신용불량자가 됐으니 무척 화가 나셨을 겁니다."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모르는 빚에다 가족들의 외면까지 겹쳐 그는 호주시절보다 더 큰 절망감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카드 빚은 계속 늘어만 갔다.

이런 A씨에게 때맞춰 시행된 개인회생제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녀는 "개인회생을 신청한 후 추심전화도 사라지고 절차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까지 했다"며 "무엇보다 삶의 유일한 낙이자 활력소인 간호사 일을 계속하면서 신불자에서 탈출하게 됐으니 내핍생활은 당연히 감내해야 되지 않겠냐"고 담담히 말했다.

법원이 최종 인가한 그녀의 변제계획안은 42개월 동안 매달 83만원을 갚아 원금을 100% 청산하는 것. 이 기간 동안 40만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기 때문에 그는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한다.

A씨는 "신불자들에게 개인회생은 삶의 기회를 한번 더 얻는 것과도 같다"며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빚을 갚으며 부모님께도 그동안 못한 효도를 다 하고 싶다"고 몇년 동안 잊어왔던 희망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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