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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9세기 빅토리안 시기는 곧 산업혁명의 시대이기도 했죠. 이런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파산자의 증가였어요.

 

아니,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의 돈을 빌려 쓴 빚쟁이가 돈을 갚지 않고 온전하게 살수 있을까요? 영국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등장한 법이 바로 1813년 파산자법(the Insolvent Debtor's Act)이었어요.

 

그 결과 더 이상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 “채무자 교도소(debtor's prison)"에 수감되었지요. 한마디로 채무불이행에 놓인 파산자들만 모아놓은 교도소라는 의미지요.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탈락한 중산층도 예외 없이 이런 채무자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거죠.

 

일반 범죄인들도 강제노역을 시키던 당시 영국사회에서 남의 돈을 갚지 않은 사람에게 편하게 지내게 하지는 않았겠죠. 물론 채무자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을 하며 번 수입으로 자신의 빚을 갚아나가야만 했지요. 그뿐인가요? 사진자료(1,2,3,4,5참조)에서 보다시피 다양한 족쇄를 채워놓기도 하며 채무이행을 강제하기도 했으니까요. 뭔가요? 빚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껴보라는 뜻이었을까요?

 

당시 런던에는 일곱 개의 채무자교도소가 있어 악명을 떨쳤는데요. 이런 종류의 교도소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을 들자면 단연 런던에 있던 마샬시교도소(Marshalsea Debtors' Prison)였어요. 왜냐하면 바로 영국의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사진6참조)“가 어린 시절 바로 이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1824년 2월 20일 그의 부친인 ”존 디킨스(John Dickens, 사진7참조)“가 이웃에 사는 제빵업자인 ”제임스 커“로부터 빌린 40파운드 10실링을 갚지 못하게 되어 마샬시교도소에 수감되거든요. 결국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배로우와 어린 세 명의 자녀까지 함께 1824년 4월 마샬시교도소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되지요. 연대책임을 져야했으니까요.

 

가족의 빚으로 인해 사회의 나락으로 떨어진 12살의 어린 찰스 디킨스는 구두약 제조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해야만 했어요. 몇 달후 친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디킨스가 사망하며 유산으로 450파운드를 남기는데요 이 덕분에 어린 찰스 디킨스는 채무사면을 받고 교도소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어린 시절 겪은 이런 혹독한 경험은 그의 여러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지요. 스스로 풍족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찰스 디킨스가 돈으로 인해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지자 비로소 사회를 바라보던 눈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그는 여러 작품 속에서 당시 영국사회의 부조리와 악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현재에도 그 생명력이 꺼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찰스 디킨스가 마주하던 당시의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가계부채 1,000조라는 말도 너무 익숙하다보니 얼마만한 액수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그게 다 빚이잖아요.

 

비싼 등록금에 힘들어하는 대학생과 부모, 수백만의 실업자, 천만에 가까운 비정규직. 이들 또한 빚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이웃이잖아요. 이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다시 재기의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커다란 담으로 둘러싸인 채무자 교도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빚은 결국 갚아야 끝나는 문제인데 그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출처-<박순채 페이스북>/<아시아교정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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