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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과 집중호우로 인하여 중부지방에 예년 강우량을 크게 웃도는 많은 비가 내려서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면 법적으로 배상받을 수 있을까?


○불가항력 재해, 승소 가능성 낮아


법조계에 따르면 폭우 피해의 경우 공공시설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민사ㆍ행정소송을 통해 분쟁 해결이 가능하지만 천재지변적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아 관리자의 시설 관리 부주의에 따른 책임을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


때문에 법원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일관되게 판결했다.


지난 2002년 12월 서울 신림동 폭우 피해자 30여명이 서울시와 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예측 강우량을 훨씬 넘는 불가항력적 재해"라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앞서 1998년 6시간 동안 340㎜라는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중랑천이 범람, 홍수 피해를 본 주민 110명이 서울시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수해 지역 제방이 정부가 책정한 계획홍수위보다 높았고 상습 침수지역이 아니었다"며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관리상 하자 인정되면 배상 가능


예외도 있다. 법원은 폭설이나 폭우로 각종 시설물 붕괴 등 안전사고가 일어날 경우 우선 사고의 원인을 따져 사고유발자나 관리 의무자 등에게 관리상 하자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기본적으로 시설물 소유자에게 관리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다.


판례는 여름철 빈번한 감전사고의 경우 가로등이나 끊어진 전선에 의해 감전 피해를 당했다면, 누전 상황에 대비해 자동 차단 시설을 설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취지에서 시설 관리자가 손해를 배상토록 하고 있다.


2001년 7월 서울지역 집중호우로 당시 서초구의 길을 걷다가 가로등 누전으로 왼쪽 망막을 다친 이모씨가 서울시와 서초구를 상대로 1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은 지자체에 85%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논리로 현행 국가배상법 역시 '도로·하천, 그 밖의 공공 영조물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했을 때 국가나 지자체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은 한강변 주차장에 화물차를 세웠다가 폭우로 차가 물에 잠겨 피해를 본 전모씨가 2008년 서울시와 주차장 관리 사업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시는 풍수해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있고 차량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를 대비, 중대형 화물차를 이동할 견인장비를 갖추고 대피 조치를 했어야 한다"며 피해액의 80%를 배상토록 했다.


"단지 집중호우라는 사실만으로 불가항력에 따른 면책을 무조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천재지변이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정도로 이례적인 것이었는지, 예방 가능성은 없었는지에 따라 불가항력 사유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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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도우미 임철민
(주/야) 010 - 3755 - 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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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격 남용을 인정하기 위한 요건]

 1. 법인격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거나, 채무면탈,계약상의 채무의 회피,탈법행위 등 위법한 목적달상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하는 등의 주관적 의도 또는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 2.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와 배후자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혼용되었는지 여부

--> 일부 혼용된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법인이 형해화되어 그 법인격을 부인할 정도로 소외 회사와 피고 사이  에 심각한 재산의 혼용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 소외 회사와 관련하여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들은 소외 회사의 형해화에 관한 사유로 삼기에 적절하거나 충분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3.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절차를 밟지 않았는지 여부

 

4. 회사 자본의 부실 정도

 5. 영업의 규모 및 직원의 수 등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영업에 지나지 않는 상태로 될 정도로 형해화되어야 한다. 

6. 피고 자신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외 회사의 법인 형식을 이용함으로써 그에 대한 법적 효과의 귀속을 부당하게 벗어나려고 하는 법인격 남용행위가 인정되어야 함.

 

7.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법인의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에 대한 법률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게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서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고, 따라서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01. 1. 19. 선고 97다21604 판결 참조).
여기서 회사가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다고 보려면,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와 배후자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여부,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절차를 밟지 않았는지 여부, 회사 자본의 부실 정도, 영업의 규모 및 직원의 수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 영업에 지나지 않는 상태로 될 정도로 형해화되어야 한다.
또한, 위와 같이 법인격이 형해화될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한 경우,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이 경우 채무면탈 등의 남용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고, 그와 같은 지위를 이용하여 법인 제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며, 위와 같이 배후자가 법인 제도를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앞서 본 법인격 형해화의 정도 및 거래상대방의 인식이나 신뢰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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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열대야는 수면을 방해하고 이로인하여 일상생활도 지장을 주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대야에 대처하는 법을 알아봅시다.

 

열대야는 한 밤 중에도 최저기온을 25℃이상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열대야 증후군은 우울증과 불안증 같은 정신과 질환을 가져올 수 있으며 신체적인 면역기능과 자율신경계에 이상을 초래해 소화기계 질환, 심혈관계 질환, 내분비계 질환 등의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실내 적정 온도 20~23℃

 

열대야로 인해 잠을 자기 어렵다면 실내 온도를 측정해 20~23℃보다 높을 경우 이를 낮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체온이 36.5℃지만 0.5℃가 낮아야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에어컨과 선풍기를 충분히 가동해 잠 들기 전 몸의 온도를 함께 낮출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하지만 장시간 에어컨과 선풍기를 트는 것은 몸의 탈수와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필히 타이머를 맞춰놓고 잠드는것이 중요합니다.



찬물샤워 NO!

 

잠들기 전 무리한 운동과 더위로 인해 찬물로 샤워하는 행동은 잠을 설치게 하는 주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운동을 하면 교감신경이 흥분돼 쉽게 잠에 빠질 수 없게 되며 찬물로 샤워하는 것 또한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행동이므로 미지근한 물로 몸을 식히는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꼭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도 NO!

 

한 여름밤의 무더위 속에서 잠이 오지 않는다면 꼭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이는 잠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만성적인 불면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써 잠을 청하기보다는 저절로 졸려서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술은??

 

술은 잠드는 것에는 도움 되는 것 같지만 실제 깊은 잠을 자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수면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시원한 치맥에 찬물로 샤워 후 잠들고 싶은 욕망은 무엇일까요.아니러니합니다.


덥다고 짜증내지말고 즐기며 여유있는 열대야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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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 OOO (남) 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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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이라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달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들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위해 되돌려주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중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이겠습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서른 살이 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어떤 사람을 고용했고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나는 쫓겨났습니다. 성인으로서 내 삶의 초점이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참혹함에 빠졌습니다.

 

첫 몇달동안 나는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앞서의 기업가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어떤 느낌, 지휘봉을, 내게 전해진 것처럼 그렇게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이 그것을 조금도 바꾸진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중 최고의 경우였습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은, 모든 것에 확신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 내 처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린과 나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시험약이었지만, 환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 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이런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날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으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약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받았는데,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췌장이라는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 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은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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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 신청을 받아보니 채무자가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파산관재인 제도를 활용해서 면밀하게 심사하고 자료를 받고 있지만 자꾸 악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채무가 초과해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데도 ‘파산을 신청해버리자’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채무자 처지에서는 돈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보다 파산이 낫겠죠. 하지만 개인파산제의 취지는 ‘노력했지만 불운하게’ 채무 초과 상태에 빠져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채무자를 새출발시키자는 데 있거든요. 엄격한 전제조건이 ‘성실하지만 불운했다’예요.”

 

서울중앙법원 파산부 파산6부 정영식 판사는 “앞으로 개인파산 면책결정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개인회생 심사기준을 완화하는 대신 개인파산 심사기준은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개인파산 면책결정이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채무자의 파산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심리를 거쳐 파산을 선고한 후, 면책허가가 되면 신원증명서에 파산 사실도 기재하지 않고 사회 진출에도 별다른 제약이 없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금융권에서 따로 파산인 자료를 보유하면서 약 5년간 거래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파산부가 앞으로 ‘개인파산에 대한 심사를 엄격하게 하겠다’고 밝힌 건 우리나라 전체 가계 빚이 650조원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현실에서 개인파산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파산부 판사들은 “빚을 갚지 못한다고 해서 너도나도 파산하길 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신용불량자를 포함한 금융채무불이행자는 700만명이 넘는다. 지난 3년간 채무자들은 개인회생보다 개인파산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개인회생은 개인파산과 전혀 다르다. 개인회생은 직업과 월수입이 있는 채무자가 최저생계비 150%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으로 최대 60개월 동안 성실하게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을 없던 것으로 면제받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개인파산은 가진 것을 다 털어서 채권자에게 고루고루 나눠주는 ‘빚잔치’다. 하지만 요즘은 파산 신청자가 ‘배 째라’ 식으로 무일푼을 주장하면서 면책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파산, 5년간 100배 늘어

 

 

 

고영한 파산수석부장판사는 “개인회생보다 개인파산 신청이 10배 더 접수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3년간 개인파산 신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0년엔 329건에 그쳤는데, 2005년에는 3만8773건으로 5년 동안 100배가 늘었다. 이어 2006년에는 12만3691건, 지난해에는 15만4039건으로 2000년에 비해 468배 늘었다.

 

고영한 파산수석부장판사는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이 5000여 명인데, 개인파산 신청은 5만건에 이른다”면서 “개인회생보다 파산 신청이 10배 더 접수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파산부에 따르면 개인파산의 급증은 빚 갚기를 회피하고 어떡하든 채무를 탕감받으려는 경향 때문이다. 판사들은 “개인파산 심사가 느슨해질수록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 더 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정영식 판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산선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선 파산선고 받은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신용을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파산이 뉴스거리였잖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서울만 해도 연 5만건이 접수되고 있어요. 본래 ‘파산’이라는 게 ‘재산을 깬다’는 의미거든요. 원래는 채권자를 위한 것이었어요. 재산이 조금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구 건 먼저 갚고 누구 건 안 갚을 수 없잖아요. 채권자 처지에선 다른 경쟁자를 이길 보장이 없으니 아예 골고루 나눠주길 바라는 거죠. 빚잔치를 한 다음 남은 빚은 없는 것으로 처리해 채무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자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남은 재산을 털어서 빚잔치하는 사람이 전체의 5%도 안 돼요. 대체로 자기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파산신청을 해요. 채무자가 정직하게 적어내면 바로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까지 받죠. 3~6개월이면 모든 절차가 끝나요. 빚을 다 안 갚고도 빚이 없어지는 겁니다.”

 

파산부에 따르면 앞으로 파산신청자 자격요건이 까다로워진다. 채무자의 연령과 직업, 부채규모 등을 고려해 변제 능력이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밝혀진 경우에만 파산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소액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고 면책 목적으로 하는 파산신청은 기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면책결정 받으면 아무런 피해 없어

 

 

흔히 파산선고를 받으면 면책을 받더라도 자녀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원조회 결과로 부모가 파산자라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신입사원 채용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과연 그럴까.

 

“그렇진 않아요. 부모의 파산으로 자식이 피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되면 공무원도 될 수 있어요.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의사도 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사람들이 파산을 신청했다가 면책허가를 받지 못하면 그 자격을 잃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사회적 제한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은행에서 특수채무자 목록을 5년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은밀히 파악하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원증명서에 기재되지는 않아요. 최근 신문 공고 대신 일정 기간 인터넷 공고가 이뤄지기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드물어요.

 

법원이 5년간 기록을 보유하는 것은 보존연한 때문이지 일반적으로 열람은 허용하지 않아요.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정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도 공공의 질서에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는 취지의 판례가 있어요. 반면 파산선고를 받고도 면책결정을 받지 못하면 달라요. 신원증명업무를 관장하는 등록기준지에 통지되고 파산선고 사실이 신원증명서에 신원증명사항의 하나로 기재될 수 있어요. 파산선고만을 받았다면 취직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소비자파산 1호는 2억6000만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1997년 5월30일 서울중앙지법 합의 50부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현모(당시 43세)씨다. 1962년 제정된 파산법에 소비자파산제도가 명시되어 있었지만 법원이 개인의 파산 신청을 받아들여 선고한 건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채무 원리금을 탕감받는 파산은 기업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채무자를 구제하는 개인채무자회생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건 2005년. IMF 금융위기에 이어 신용카드 대란이 벌어지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각종 범죄와 가정불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자 국회는 기존의 도산법, 회사정리법뿐 아니라 개인채무자회생법을 제정했다. 법원이 신용불량자의 사회적 재기를 도와주는 제도를 마련한 셈이다.

 

개인회생은 채무자의 경제 능력에 비추어 채무액을 조정해 채무자가 채무의 일부를 갚으면서 재기하게 하는 제도다. 개인채무자회생법으로 법원은 채권자의 사정보다는 채무자의 재기에 치중하게 됐다.

 

정 판사는 “개인파산의 매력은 면책결정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파산선고는 채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최후의 응급처방이지만 면책결정까지 받아야 사실상 채무변제의 책임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정 판사는 “요즘 재산이 하나도 없는 파산 신청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생계비만 남기고 전 재산을 채권자에게 돌려주고 빚 전액을 탕감받아야 하는데, 개인파산 신청자의 90% 이상이 빚잔치해야 할 재산조차 없는 딱한 채무자라는 것이다.


숨겨둔 재산을 찾아라!

 

 

숨은 재산을 찾는 건 파산부 판사들의 힘든 과제 중 하나다. 신청자들은 재산이 무일푼이라고 하지만 재산을 차명으로 돌려놓고 파산을 신청하는 파렴치족과 얌체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파산관재인의 임무가 더욱 무거워졌다. 앞으로 파산관재인들이 채무자 재산심사에 더욱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재산관계와 소득 등에 대한 심리와 검증을 맡고 있다. 채무자의 재산을 점유하고 관리하면서 처분할 수 있다. 법원의 허가를 얻어 채권의 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정영식 판사에 따르면 요즘 재산이 전혀 없는 파산 신청자가 늘고 있다.

 

이밖에도 채권조사일에 출석해서 채무자의 상황을 채권자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채무자의 재산 소송을 대신 수행하기도 한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는 약 30명의 파산관재인이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파산 신청자가 숨겨놓은 재산을 파산관재인이 심사 과정에 찾은 사례가 많다. 숨겨놓은 재산이 적발될 경우 파산신청자는 면책허가 결정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전체 파산 신청 건수의 1.18%에 해당하는 1424건에 대해 면책불허 판정이 내려졌다.

 

“자기 재산을 지키고 싶은 욕심은 본능이겠죠. 개인파산 신청자는 채권자 목록, 진술서 등을 직접 써 냅니다. 하지만 법원은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보정명령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판사들은 그걸 읽고 판단해야 해요. 카드 사용내역서까지 제출받아요. 골프를 친 적이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신청자의 부동산이 없다는 건 본인 명의로 없다는 것이니까 법원은 부모형제의 부동산까지 파악합니다. 파산관재인 보수를 법원에 예납하지 않아 기각되는 경우도 많아요. ‘돈이 없어서 파산을 신청하는데 관재인 보수까지 예납해야 하느냐’고 불만이 많아요. 절반 이상은 안 냅니다. 그중 상당수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어 이것저것 심사를 하게 되니 ‘아차, 걸리겠구나’ 싶어 그만두는 경우예요. 앞으로 파산 신청자의 재산조사뿐 아니라 소득조사까지 엄격하게 할 겁니다.”

 

정 판사는 “숨겨놓은 재산과의 숨바꼭질이야말로 개인파산 신청사건 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특히 어린 자녀 명의의 재산이 있는지, 또 최근에 취득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자녀 명의로 돌려놓은 재산이 파악되면 파산관재인을 통해 ‘재산을 돌려놓아라’고 통보합니다. 안 내놓고 버티다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요. 2년간 살던 주소지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최근 집을 팔고 난 다음 파산 신청을 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채무자 재산을 제3자 명의로 돌려놓고 자신은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를 해놓는 방법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채권자들이 이를 알고 이의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지요.”


신정아 사건의 교훈

 

 

실제로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으로 채권자가 피해를 본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기도 안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범식(40)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5년 전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너도나도 빌려달라고 해서 한 친구에게 2억원을 빌려줬죠. 친구는 1년 동안 2부 이자라면서 꼬박꼬박 송금을 해주더군요. 하지만 작년부터 못 갚겠다고 죽는 소리를 하더니 연락이 끊겼어요. 어느 날 법원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앞으로 5년간 매월 몇십만원씩 부치겠다는 겁니다. 사업을 접은 후 신용불량자가 된 그 친구가 계약직으로 취업한 탓에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동의했지요. 그런데 최근 다른 친구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제가 너무 순진했더라고요. 그 친구는 채무자가 개인파산을 신청하자 법원 통지를 받은 후 곧바로 이의 신청을 했답니다. 채무자가 한창 잘나갈 때 친척 명의로 땅을 사놓았다고 좋아한 적이 있는데 조사해달라고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제게 돈을 빌려간 친구도 이혼할 때 아내에게 과다한 위자료를 줬어요. 혹시 그쪽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소득과 금융자산을 허위 신고한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학력위조와 횡령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정아씨의 개인회생 신청사건이다. 2005년 신씨는 ‘1억40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면서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가 법원에 제출한 신청자료에 따르면 주된 이유가 대출빚이었다.

 

당시 신씨는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안에 ‘월 평균 생계비가 60만2000원, 성곡미술관에서 24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다’고 적었다. 법원은 그의 개인회생 신청을 받아들여 “매월 180만원씩 5년간 갚아나가라”고 결정했다.

 

신씨는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대로 꼬박꼬박 갚았지만 사건이 터진 후 사정이 달라졌다. 그가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월세 200만원짜리 호화 오피스텔에 살고 있으며 주식투자금액만 6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기 때문. 법원은 신씨의 개인회생 절차를 곧바로 폐지했다. 개인채무자회생법 위반 혐의였다.

 

파산부 판사들은 최근 재산을 교묘하게 숨기는 얌체 파산 신청자가 부쩍 늘고 있기 때문에 채권자의 적극적 이의신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파산4부 이용운 판사가 최근 겪은 일이다.

 

“한번은 기초단체장선거에 출마한 어떤 분의 부인이 파산 신청을 했어요. 재산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돼 있더라고요. 채권자들이 이의를 신청했어요. 선거 전 등록한 재산액수를 파악해 ‘그땐 재산이 있다고 신고해놓고 왜 이제와 없다고 하느냐’고 따진 거죠. 부인은 ‘채권은 회수하지 못할 것 같아 파산 신청서 재산목록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선거 때 등록한 재산목록에는 채권이 포함됐다는 거죠. 그렇지만 재산목록엔 채권도 기재해야 하거든요. 파산관재인이 아니더라도 채권자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채무자의 거짓말을 다 잡아낼 수 있어요.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면 법원이 채권자에게 연락합니다. 채무자의 면책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거죠. 문제는 우리나라 채권자들이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몰빵’ 빚 갚기는 안 돼

 

 

 

이용운 판사는 “채권자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채무자의 거짓말을 다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면책이 허가되지 않는 사연도 다양하다. 이용운 판사의 설명이다.

 

“재산을 은닉했거나 사기파산인 경우엔 면책을 허락하지 않아요. 신용카드로 물품을 사서 다시 팔아버리는 식으로 돈을 만든 것도 포함됩니다. 또 공평한 변제가 아니라 일방적 변제도 불허 사유에 해당됩니다. 편파 변제인 거죠. 마음에 드는 채권자에게만 ‘몰빵’으로 빚을 갚는 사람도 있는데, 면책받기 힘들어요. 파산의 기본 이념에 반하는 겁니다. 파산은 채권자들이 공평하게 변제받는 게 원칙입니다. 빚의 규모보다 빚을 평소에 어떻게 썼는지가 더 중요해요. 도박을 했거나 유흥비로 탕진했다면 면책받을 수 없거든요.”

 

개인회생의 면책허가는 개인파산에 비해 유연한 편이다. 유흥비와 도박빚 따위도 포함된다. 개인회생은 5년간 일정 금액을 채권자에게 갚겠다는 것이기에 채무의 원인이 무분별한 씀씀이거나 유흥비, 심지어 도박비용이라고 해도 법원이 면책을 허가한다.

 

또한 이른바 카드깡 거래의 경우 면책불허 사유지만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면책허가를 내준다. 상당수 신청인이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사채업자의 권유로 카드깡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용운 판사는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채무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카드빚이 가장 많아요. 유흥비보다는 생활비로 쓴 거죠. 실직을 한 가장이 여러 장의 카드로 생활비를 쓰면서 돌려막기를 한 거죠. 그러다 카드값을 못 내는 위기가 닥치면 사채시장에서 대출까지 합니다. 빚더미에 앉는 건 순간이에요. 카드값 내려고 사채를 썼다가 파산에 이른 사람이 많아요. 또 카드대란이 있었잖아요. 카드 한도에 걸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거죠. 한도가 갑자기 내려가니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겁니다. 카드회사의 연체이자가 거의 살인적이거든요. 2~3년간 못 갚으면 연체료가 원금만큼 불어납니다.

 

다음으로 빚보증이 많아요. 자식이 부모를 보증했거나 아내가 남편을 보증한 경우죠. 친족 보증도 많아요. 올 6월부터 은행이 가계대출시 연대보증제도를 없앤다는데 반가운 일입니다. 은행이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물이 없는 경우 연대보증에 의존했죠.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도 문제예요. 기업과 별개인데도 기업의 채무를 의무적으로 연대보증을 서는 거죠. 회사가 문을 닫으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젊은 여성이 남자를 잘못 만나 빚더미에 오른 사례도 많더라고요. 남자친구의 사업자금이나 유흥비, 혹은 생활비를 대준 거죠. 또 학자금 대출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젊은이도 많아요. 그런데 대출받은 학자금 대부분을 부모가 썼더군요. 당사자는 학교를 휴학했다는 거예요. 또 가족의 병원비 지출 때문에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아요. 월급 100만원을 받는데 부모의 병원비가 100만원 이상 나온다면 이곳저곳에서 대출받아 병원비를 내게 되겠지요.”

 

너도나도 파산신청을 하는 세태다 보니 웃지 못할 사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파산6부 김용하 판사가 최근 겪은 일이라며 들려준 얘기다.


굿 하다가 파산

 

 

“아들을 낳겠다고 시험관아기시술을 열 번 이상 받다가 빚을 진 사례도 있어요. 시술비를 정부에서 절반가량 지원받지만 한 번에 200만원은 본인이 부담해야 하잖아요. 열 번 이상 하면 부수적인 비용까지 포함해 4000만~5000만원이 깨집니다. 결국 아들도 못 낳고 파산까지 한 겁니다. 어떤 신청인은 가족의 병 때문에 3000만원짜리 굿을 몇 번 하다가 빚을 졌더라고요. 굿으로 병을 해결하려다 빚의 구렁텅이에 빠진 거죠. 또 온 가족이 개인회생을 신청한 경우도 있어요. 막내인 남동생의 미국 유학자금을 대느라 누나들이 줄줄이 대출을 받은 거죠. 최근엔 식당을 경영하는 개인사업자의 파산신청도 많아요. 대출받아서 식당을 개업해놓고 2~3년 후에 망해버리면 초기 창업자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죠.”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같은 고액연봉자의 회생절차 신청도 늘고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고액의 소득이 있지만 채무가 훨씬 많아 변제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회생절차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신청자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2년 새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정영식 판사는 “5억원 이상의 빚을 진 채무자는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없다”면서 “법인 회생에 준하는 회생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담보채무 5억원 이상, 담보채무 10억원 이상인 경우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없어요. 법인회생에 준하는 회생절차를 밟게 됩니다. (회생절차는) 개인회생과 용어가 비슷하지만 좀 달라요. 채무자의 재산과 미래 소득으로 회생재단을 구성해서 앞으로 10년간 일정한 채무를 상환하고 나머지는 면책받는 방식입니다.

 

 

고액채무자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법원 품으로 들어오라”고 충고하는 김용하 판사.

 

얼마 전에 200억원의 빚을 진 의사를 봤어요. 대형병원을 차렸는데 동업자와 갈라지는 바람에 채무가 고스란히 자기부담이 된 겁니다. 취직을 했는데 월급이 1000만원 정도였어요. 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폐지됐어요. 결국 파산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전문직 종사자의 파산 신청이 늘어 개인회생의 기준을 5억원 이상으로 늘리는 것도 고려해볼 시점이에요. 의사들은 개인회생을 신청하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채무가 5억원이 넘고 심지어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1년에 1억원 정도 5년 동안 채권자들에게 공통으로 변제하고 나서 파산을 신청하라’고 권유했어요.”

 

과거 의료법에서는 파산선고를 받는 것이 의료인의 결격사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07년 의료법 개정으로 파산선고에 대한 결격사유 규정이 사라졌기에 법률상 의사라도 파산 신청이 가능하고 파산선고를 받아도 의사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 의사들이 파산 신청을 꺼리는 것은 법원이 관행적으로 고소득 전문직일 경우 파산제도를 통해 즉시 면책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고액채무자는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다. 개업의사가 가장 많고 교수, 교사, 공무원 등도 신청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이들은 평균 10억~50억원의 채무를 졌으며, 소득은 적게는 월 500만원, 많게는 2000만원대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2006년 22명에 지나지 않던 고액연봉의 회생절차 신청자는 지난해 41명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 들어선 5월말 현재 24명으로 집계됐다. 개업의사와 한의사가 가장 많다고 한다.


“법원으로 빨리 오는 게 사는 길”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에는 유명인도 예외가 아니다. 유명세만 믿고 사업에 손을 댔다가 고액채무자로 전락해 개인회생 혹은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 아역 탤런트 출신인 L씨는 패션사업을 하다 실패해 5억원의 빚을 지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유명 영어강사 L씨는 남편의 보증에 따른 과도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끝내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현재 재산실사를 받고 있다. 판사들은 입을 모아 “고액채무자의 회생절차는 개인회생보다 더 험난한 길”이라고 했다.

 

“개인회생은 동의가 없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면책비율과 변제금액을 결정해서 인가할 수 있는데 고액채무자의 회생절차는 면책비율과 변제금액 등 회생계획안을 들고 채권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아요. 차라리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동의해주는데 말입니다. 담보권자의 4분의 3, 무담보권자의 3분의 2가 동의해줘야 해요. 또 비용도 들어요. 재무상태를 조사하는 데 회계사 선임비가 들고 변호사 비용도 들어가요. ”

 

고액채무자로 회생절차를 밟는 신청자 대열에는 중소기업 경영자와 자영업자도 눈에 띈다. 자영업자의 경우 시설자금 투자를 위해 막대한 대출을 받았다가 예상만큼 수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김용하 판사는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과 높은 금리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자를 망하게 한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법원의 품에 들어와 살아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법원에서 채무재조정을 빨리 받을수록 회생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법인회생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수익금으로 갚아나가는 겁니다. 갈 때까지 가지 말고 악화되기 전에 빨리 손들고 (법원에) 들어오면 살 수 있죠. 늦게 오면 회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만 해도 34건의 법인회사 회생합의사건이 들어왔어요. 금형을 제조하는 A업체의 경우 매출원가가 급상승했어요. 그래서 이익이 극감했지요. 국내 수요자들이 저가제품을 내놓는 중국업체에 발주하는 바람에 매출이 격감하자 견디다 못해 회생절차를 신청했더군요. 액세서리 제조업체도 마찬가지예요. 금은의 원자재 가격이 오르니 손해가 막심하고 빚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된 거죠. 건설업체도 그래요. 미분양이 증가하면서 현금이 돌지 않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또 민간 분야의 수주가 없어 관급공사를 무리하게 수주하다 보니 대금 회수가 늦어져 현금이 더 부족해지는 거죠.”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뒤편에 있는 옛 사법연수원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수석부장판사를 포함해 총 18명의 판사가 합의부와 파산단독부 개인회생단독부로 나뉘어 일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회생업무(구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판사는 13명.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사건을 처리하면서 기업회생사건을 함께 맡는 경우도 있다. 파산부로 발령을 받으면 의무 재직기간이 3년이다. 파산단독 판사 한 사람이 매월 200~300건을 책임지고 있다.


파산의 전제조건은 정직성

 

 

 

파산부 업무에 대해 “빚 때문에 생사가 갈리는 채무자를 살려주는 일이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권순민 판사.

 

파산부 판사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민·형사 판사와 다르다. 개인파산을 담당한 파산5부 권순민 판사는 파산부 판사의 시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파산부에 오기 전에 썼던 판결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민사재판에서는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어요. 원고인 채권자 시각이었던 거죠. 그런데 여기선 채무자의 처지에서 판단하잖아요. 일은 많지만 재미가 있고 보람을 느껴요. 빚 때문에 생사가 갈리는 채무자를 살려주는 일이라 명분도 있어요. 전체 신청자의 60%가 생활비와 사업실패로 개인파산의 길로 접어들고 있어요. 누구나 빚을 질 수 있지요. 하지만 법원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됩니다. 제대로 기재하지 않고 허위로 작성하고 속이는 채무자는 절대 구제받을 수 없어요. 평소의 신용카드 거래내역은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평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죠. 은행거래내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낭비를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파산선고의 전제조건은 정직성이란 얘기다. 일각에서는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제도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파산과 회생’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도 하지만 고영한 파산수석부장판사는 이렇게 당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실수와 불운 때문에 경제적으로 파탄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혹독한 채무 부담으로 자칫 자살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사회가 이들을 끌어안고 경제적으로 낙오되지 않도록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 파산과 회생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들도 이런 맥락에서 파산과 회생제도를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파산제도나 회생제도 모두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만, 파산이 회생에 비해 채권자를 침해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기에 파산절차에서는 성실성과 정직성을 더욱 더 요구하는 것입니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거짓으로 진술하는 건 용납할 수 없죠. 빈곤층뿐 아니라 최근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사, 한의사 등 자영업자를 포함해 과다한 채무로 실의에 빠진 채무자들이 파산과 회생제도를 통해 과중한 채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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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파산 사례 ]

 

수년전 신청인의 자녀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게 되었고, 고가의 항암제를 투여하는 화학치료, 방사선치료 등 불치병으로부터 자녀를 지켜내기 위해 신청인 및 신청인의 배우자는 모든 수입을 동원하여 병원비를 지불했고, 부족한 부분은 대출을 받아 의료비와 간병비로 사용 하였습니다.

 

그러나 투병하던 자녀는 끝내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신청인 및 배우자에게는 과도한 채무만이 남게 되었고, 이후 운영하던 가게마저 급격하게 기울어서 수년째 채무변제를 하지 못한 채 채무불이행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던 중에 신청인과 배우자는 개인파산제도를 알게 되어 부부 개인파산신청을 하게 되었고, 이어 법원의 파산선고 및 면책결정을 받았던 사례였습니다.

 

 

 

 

 

 

 

신청인의 자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신청인 및 배우자에게는 과다한 의료비 지출로 인해 채무를 지게 된 것이어서 이에 대한 소명을 위해 신청인 자녀가 진료받고 치료받았던 병원의 진단서 및 입원 확인서, 진료비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출하여, 신청인과 배우자가 불가피하게 지출할 수 밖에 없었던 의료비 지출 과다를 인정받아 파산선고 및 면책결정을 받은 사례.

또한, 자녀의 의료비 지출로 인해 보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던 신청인 및 배우자가 위와 같이 겪었던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마지막 보루로서, 경제적 형편에 우선하여 가입유지하고 있는 현존 보험에 대해서도 관련자료들을 제출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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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할 때마다 달리는 댓글 가운데 뜨끔한 내용이 2가지 있다. 하나는 "그러는 기자 너는 부자냐"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 소용없다, 부모가 부자여야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너는 부자냐"라는 문제는 사적인 부분이니 일단 넘어가자. 반면 '부자 대물림' 지적은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이므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부자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고 부모가 가난하면 평생 돈에 쪼들리며 힘겨운 고역에 시달려야 한다면 사회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거창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물려 받은 재산 없이 이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글은 재산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돈 없는 당신이 부자가 되기 위한 7단계이다.


1. 당신 자신이 최고의 자산이다.


돈이나 건물, 땅 혹은 금덩이가 없다고 재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 자신, 당신의 생명과 신체, 정신, 영혼, 지식, 지혜, 인간관계 그 모든 것이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경영학에서 거창한 말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하는 것을 당신은 가지고 있다. 인적 자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자일 수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요크 대학의 모셰 밀레브스키 교수는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인적 자본이란) 물적 투자 대상이 아니지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일할 수 있는 능력,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능력,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인적 자본"이라며 "당신은 마치 금광이나 유전 같은 존재이며 특히 20대라면 당신은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인적 자본"이라고 말했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일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수록 일의 결과물로 재정적 자산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인적 자본의 가치, 즉 당신이 미래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인적 자본은 지갑에서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은 아니지만 예금이나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다른 자산처럼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2. 주제를 파악하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말이면서 역사상 가장 지혜롭다고 평가 받는 명언은 아마도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일 것이다.


당신 자신은 소중한 인적 자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더 높은 가격으로 채용되고 어떤 사람은 헐값에 사용된다. 당신 자체가 자산이란 사실을 인지했다면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봐야 한다.


당신이 가진 능력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력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지 냉정한 시선으로 계산해보라.


3. 인적 자산의 가치를 높여라


주제 파악이 끝났다면 3단계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늘리기 위한 투자만 투자가 아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투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금 위치가 100%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았으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두들 바란다.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는 재산, 자기 자신에 투자하라.


하지만 투자할 때는 리스크와 기대 수익을 따져봐야 한다. 돈을 투자할 때도 원금이 보장되는지, 원금 손실 위험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기대되는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지 않는가. 자신에게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투자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3가지다. 첫째, 이 투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수익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에 투자하고 싶다면 좋다.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수익이 무엇인가.


투자의 기대 수익을 생각할 때 주의할 점은 자의적으로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성형수술을 해서 외모가 더 나아지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진짜 그럴까. 과연 외모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일까. 외모가 개선되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둘째, 투자에 따르는 비용과 위험은 무엇인가. 성형수술을 할 때 드는 비용과 걱정되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가 되려 하는데 그 때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고 대학교수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위험요인은 무엇인가 따져보라.


셋째, 투자를 감행하고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임용고시를 통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임용고시는 앞으로 몇 살 때까지 도전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그 때까지 시험에 붙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마련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했을 때 극복하기가 어렵다.


4. 일하면서 투자하라


돈이 필요해서 서둘러 일을 시작한 뒤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급여가 너무 낮아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등 이유는 많다.


이 때문에 뒤늦게 직장을 그만두고 새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감하게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거나 아니면 아예 로스쿨이나 약학대학원에 입학해 다른 직업을 모색하는 식이다.


이 때 2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단순히 직장을 옮길 생각이라면 절대 지금 직장을 그만 두지 말라. 커리어 관리 회사인 식스피겨스타트(SixfFigureStart)의 공동 창업자인 캐롤린 센지아-레빈은 새로운 직장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지금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이 있는 사람이 직장 없이 일을 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지금 직장에서 일이 많아 직장을 옮기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회사에 무엇인가 이유를 대고 근무 시간을 조절해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회사에 이유를 대기가 어렵다면 출근 전, 퇴근 후, 공휴일 등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기억하라. 실직자가 되는 순간 일자리를 얻기는 배로 더 어려워진다.


둘째, 일의 내용을 바꿀 생각이라면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광고회사로 이직하거나 부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사람이 금융회사로 전직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지만 기업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월급 주면서 일을 가르쳐야 할 필요는 없다.


일의 내용을 바꿀 때 지금까지의 경력이 새로운 일에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직업을 바꾸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나이가 들수록 당신 자신과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분리하기가 어려워 완전히 다른 분야로 이직하기는 어렵다.


다만 변호사나 약사처럼 자격증으로 보호가 되는 직업은 전직이 조금 더 용이하다.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마저도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져 전직 커리어를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5. 인적 자본과 금융 자본은 다른 곳에 투자하라.


당신이 일을 해서 얻는 근로소득과 이 근로소득을 투자하는 금융자산은 분리돼야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우리사주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당신 자신이라는 인적 자본과 당신이 가진 금융 자본을 한 기업에 '몰빵'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이 다니는 회사가 위험해진다면 당신은 인적 자본을 통해 벌던 근로소득은 물론 우리사주라는 금융자산까지 잃게 된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에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엔론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한 순간에 직장도 잃고 돈도 잃었다.


아울러 안정적인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일수록 금융 자산은 조금 위험한 곳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인적 자본이 안정적 소득을 창출하므로 금융 자산으로는 좀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분야에 투자해도 좋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교사나 공무원 같은 경우 급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주식형 펀드 등에 장기 투자해 은행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정년이 짧은 기업에 종사하거나 근로소득 자체가 불규칙한 프리랜서라면 직업이 불안정한 만큼 금융 자산은 안정적인 예금이나 채권으로 모아나가는 것이 좋다.


6. 건강에 신경 쓰고 보험에 가입하라


몸이 거의 유일한 재산이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 자신의 생활 습관을 꼼꼼히 살펴 건강에 해롭거나 몸에 무리가 되는 습관은 고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한다 해도 질병이나 사고를 100%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몸 외에 다른 재산이 없는 사람일수록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보상 받을 수 있도록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7.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라


가진 돈이 별로 없는 사람, 학벌도, 인맥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돈이 없어서 안돼." "저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잘 되는 거야." "저 사람은 부모가 권력가니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있는 놈만 잘되는 더러운 세상." 이런 생각이 자신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방해꾼이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잘난 것도 없는데 부모 잘 만나서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당신 자신은 못된 상사 만나 휴일도 없이 근무하는데도 쥐꼬리 같은 월급에 나날이 살림살이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는 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있다. 부정적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와 환경을 낳는다.


아무리 부정적인 환경이라도 단 하나라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 직장생활이 너무 괴롭다면 직장에 계속 다니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되 괴로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작은 즐거움을 찾아보자.


예컨대 일주일에 한 번씩 꽃 한 송이를 사서 집을 꾸민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자전거를 탄다든지, 큰 돈 들이지 않고 부정적인 환경에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소일거리나 취미를 찾아보자.


마지막으로 몸 하나밖에 가진 재산이 없다고 자괴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 두 가지를 소개한다.


송나라 때 학자 정이란 분은 "소년시절에 과거 급제하고 부모형제의 권세가 대단하고 재주와 문장이 뛰어난 것이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경영의 신 마스시타 고노스케는 "못 배우고 병약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고백했다.



- 머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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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조그만 자영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으로는 처와 고등학교 1학년생 딸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약 6개월 전에 자금난으로 인하여 사채업자로부터 금 500만원을 빌리면서 집행력 있는 공정증서를 작성 하였는데 이를 갚지 못하고 변제기한을 넘기자, 최근에 사채업자가 집안에 있는 가재도구에 대하여 압류를 하였고, 압류된 물건 중에는 피아노 1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약 3개월 후에 딸아이가 시민회관에서 피아노독주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피아노가 경매로 넘어가면 딸아이가 이때까지 계속 연습해오던 피아노로 더 이상 연습을 하지 못하게 되어 독주회를 제대로 개최하지 못할 상황인데, 이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요? 참고적으로 저는 한 달 정도 지나면 금전이 마련되어 부채를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민사집행법」 제195조에 열거된 압류금지 물건을 보면, 1. 채무자 및 그와 같이 사는 친족(사실상 관계에 따른 친족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채무자 등’이라 한다)의 생활에 필요한 의복·침구·가구·부엌가구, 그 밖의 생활필수품 2. 채무자 등의 생활에 필요한 2월간의 식료품·연료 및 조명재료 3. 채무자 등의 생활에 필요한 1월간의 생계비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액수의 금전 4. 주로 자기 노동력으로 농업을 하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농기구·비료·가축·사료·종자,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5. 주로 자기의 노동력으로 어업을 하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고기잡이 도구·어망·미끼·새끼고기,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6. 전문직 종사자·기술자·노무자, 그 밖에 주로 자기의 정신적 또는 육체적 노동으로 직업 또는 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제복·도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7. 채무자 또는 그 친족이 받은 훈장·포장·기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명예증표 8. 위패·영정·묘비, 그 밖에 상례·제사 또는 예배에 필요한 물건 9. 족보·집안의 역사적인 기록·사진첩, 그 밖에 선조숭배에 필요한 물건 10. 채무자의 생활 또는 직무에 없어서는 아니 될 도장·문패·간판,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11. 채무자의 생활 또는 직업에 없어서는 아니 될 일기장·상업장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12. 공표되지 아니한 저작 또는 발명에 관한 물건 13. 채무자 등이 학교·교회·사찰, 그 밖의 교육기관 또는 종교단체에서 사용하는 교과서·교리서·학습용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14. 채무자 등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안경·보청기·의치·의수족·지팡이·장애보조기·바퀴의자,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신체보조기구 15. 채무자 등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동차로서 「자동차관리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장애인용 경형자동차 16. 재해의 방지 또는 보안을 위하여 법령의 규정에 따라 설비해야 하는 소방 설비·경보기구·피난시설,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건 등과 같으며, 「민사집행법」 이외에 다른 법령에도 개별적으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민사집행법」 제196조 제1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면 채권자와 채무자의 생활형편,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유체동산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압류를 취소하도록 명하거나 같은 법 제195조의 유체동산을 압류하도록 명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의 딸이 현재 연습중인 피아노가 「민사집행법」 제195조의 압류금지 물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귀하는 「민사집행법」 제196조 제1항에서 규정한 ‘그 밖의 사정’을 내세워 압류명령을 발한 법원에 압류금지물건 확장(혹은 압류 취소) 신청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압류금지물건의 확장 신청과 동시에 법원에 강제집행을 일시정지시켜 달라는 잠정처분을 신청하게 되는데, 이 경우 법원에서 「민사집행법」 제196조 제3항 및 같은 법 제16조 제2항에 의거 일반적으로는 담보를 제공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데 통상 담보의 제공은 현금으로 해야 하며 그 방법은 법원에 공탁하는 것이며, 이때 담보액은 법원이 재량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으나 대략 피아노의 감정가액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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